글
“국장님, FPB에서 8시 뉴스에 뇌사자장기이식등절차에관한법률에 대해 특종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뭐? 무슨 내용인데?”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이 법률에 반대하는 시위자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과 이 법률이 헌법상 자기결정권에 위배된다는 분석이 그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게 뭘 특종이라고. 이번에 시위자들 정면에서 찍은 장면 있지? 사람 제일 적게 나온 거 골라놓고, 법무팀한테 연락해서 자기결정권이니 뭐니 그런 거 전혀 해당 안 되게끔 분석해놓으라 그래. 불법시위라는 거 부각시키고. 그리고 이번에 물가인상에 관한 뉴스를 앞쪽에 배치하고. 물가인상 다음에는 외국 투자기업이 우리나라 투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 거 찾아서 쓰고.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국장님.”
“자네도 알겠지만, 정의보다 급한 건 그날 먹을 쌀이야. 그렇다고 FPB가 정의라는 생각은 하지도 마. 그놈들은 아직도 Fool’s Paradise나 꿈꾸는 놈들이니까. 그런 놈들의 정의는 유토피아에서나 이루라고 해.”
“예, 국장님.”
FPB보도국은 벌써부터 잔치 분위기였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을 추산해보니 거의 100만명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약간만 정보를 과장해서 국민들을 흥분시켜도 청와대가 뒤집힐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속보로 ‘법률안 반대 시위자 100만명 넘어’라는 문구를 내보냈고 인터넷에도 기사를 띄웠으니, 조금 있다 내보낼 8시 뉴스는 시청률도 대폭 상승될 터였다.
하지만 예전에도 특종이 터지기도 전에 DVB방송국에 먼저 알려져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유도 국가대표였던 박종주 선수의 열애 현장을 잡았는데, DVB에서 FPB방송국이 박종주 선수의 사생활을 ‘추적해’ 열애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스토킹방송국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거였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 터질 가능성이 충분했다.
두 방송국의 뉴스는 10일 오후 8시에 시작됐다.
FPB 8시 뉴스
“날이 갈수록 날씨는 추워지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100만명 넘는 국민이 서울시청 일대를 가득 채웠는데요. 뇌사자의 장기 이식등 절차에 관한 법률,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심재민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네, 심재민 특파원입니다. 지금 하늘에서 촬영한 장면을 보고 있으신데요. 무려 1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 서울 시청 일대를 가득 메웠습니다. 잘 보시면 어린이부터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들까지 함께 나와 어두워진 밤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지난 5일에는 10만명으로 시작된 운동이 닷새만에 열 배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국회의 입장은 여전히 완고합니다. 한 번 통과된 법률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법률의 개정이 없는 한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과연 국민의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법률을 국회의원이 마음대로 제정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김할머니 사건을 통해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기계에 의존하여 단지 목숨만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 헌법상 자기결정권에 의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이번 법률에 대하여 ‘뇌사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족의 의견 없이 담당 의사의 판단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뇌사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뇌사자가 생전에 연명치료를 거부했는지와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기를 원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족의 의견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인데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국민들도 원하지 않는 법안,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서둘러 통과를 시켰을까요. 아마 건강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재민 특파원이었습니다.“
DVB 8시 뉴스
“물가인상과 외국투자기업의 외면 가운데 오늘 서울 시청에는 20만명의 국민이 모여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 있는데요. 중간 중간에 촛불 대신 술병을 들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추운 겨울에 서울 시청까지 내몰았을까요. 박선미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네, 박선미 특파원입니다. 이곳은 오후 3시부터 붐비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국민들이 가득 앉아있습니다. 저기 보시는 곳에는 발언대가 있는데요. 몇몇 정치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차례로 발언대에 올라가 이번 법률의 제정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잠시 그 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좋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돈있고 인맥있는 사람이 최고다 이겁니다! 어디, 돈 없고 인맥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
“5시간째 계속된 발언 중에는 취객이 발언대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법률을 찬성하는 사람이 올라가 발언 도중 썩은 계란을 맞기도 했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간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경찰이 이 시위를 불법시위로 간주하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발생하면 인간은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가정이나 국가에서 찾게 됩니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가의 정책이 잘못돼서 내가 이렇게 산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데요. 이러한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하에’ 정치적 집회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문제는 몇몇 정치인들이 이런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명분을 쥐어주고 피와 땀을 흘리며 구호를 외치게 만드는 것이지요. ….”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는 안락사를 허용한 바 있습니다. 장기 기증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과연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법률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낳은 시위, 이들이 오후 3시부터 이 자리에 나오지 않고 일을 했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서울시청 앞 도로를 막지 앉았더라도 해결될 문제였을지 모릅니다. 갈등을 위해 갈등을 만드는 시위현장에서 박선미 특파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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